헤라서울패션위크 갈라쇼 장식한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



한 편의 시처럼 봄밤의 꿈처럼


행복이 가득한 집. 구선숙 기자.



3월 마지막 주 엿새 동안 열린 헤라서울패션위크의 대장정은 서울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갈라쇼로 마무리됐다.
이례적으로 한복 디자이너가 이 황금 시간에 패션쇼를 진행했는데, ‘패션으로서의 한복’을 당당히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갈라쇼는 해외의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모이는 자리니, 가장 한국적인 것을 가장 현대적 모습으로 새롭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한복을 복식사가 아닌 요즘 감각으로 재해석해 패션으로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이너가 필요했고 김영진 씨가 떠올랐어요. 영빈관이라는 야외 장소도 제가 제안했습니다. 바람 불고 쌀쌀했는데, 사람들이 추위를 잊을 정도로 한 편의 영화처럼 아름다운 패션쇼였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번 갈라쇼 이후 실제로 해외 백화점과 편집매장에서 구매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니 기대한 결과를 충분히 이루고 가능성을 본 셈이죠. 한복의 세계화, 활성화는 우리 스스로 하기보다는 외국 사람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디자이너를 발굴해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저의 중요한 역할이겠지요.” _ 정구호(서울패션위크 총감독)



헤라서울패션위크의 대미를 한복이 장식했다. 엿새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갈라쇼가 서울신라호텔 영빈관 뜰에서 열렸다. 김영진은 전통 한복 맞춤 브랜드 ‘차이 김영진’과 기성복 브랜드 ‘차이킴’의 대표로, 가장 아름다운 비율과 실루엣을 선보이는 전통 한복을 짓는 동시에 기존 한계를 벗어나 보다 독창적 디자인의 우리 옷을 만든다. <보그> 인터내셔널 에디터 수지멘키스는 과거 인스타그램을 통해 김영진을 “전통 의상인 한복을 계속 살아 숨 쉬게 하는 디자이너”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가야금 연주와 라이브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델이 등장, 아방가르드한 한복이 뿜어내는 첫 장면의 오라는 수묵화 같은 느낌이다. 옛 무관의 관복인 철릭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철릭 원피스, 트렌치코트같이 입을 수 있는 배냇저고리, 재킷으로 만든 연암 김씨 저고리 등 차이킴의 베스트셀러 아이템과 단속곳의 다양한 버전을 신선하게 풀어냈다. 두 번째 파트는 비비드 컬러의 향연이다. 한복의 가슴 싸개 대신 코르셋 디자인을 응용, 뒤태의 섹시한 느낌을 강조했다. 세 번째 파트는 차이 김영진의 필살기, 고혹적이고 디테일 강한 예쁜 한복이다. 머메이드 드레스처럼 부풀린 거들 치마와 짧은 저고리의 조화가 아찔한 여성미를 극대화했다. 피날레에는 모든 모델이 등을 들고 등장, 벨 라행사인, 항아리 라인, A라인 등 다양한 라인의 치마저고리 위에 장옷, 덧저고리, 배자, 심의 등을 맞춰 입고 멋진 실루엣을 만들어냈다. 서른두 벌의 컨템퍼러리 한복을 선보인 이날 쇼는 기막히게 함축된 한 편의 시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과연 김영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한복이었다. 라이브로 울려 퍼지는 주보라의 가야금 연주와 미미킴의 노래, 롤리타처럼 땋아 올리고 꽃으로 장식한 김정한의 헤어스타일링, 옷 스타일링은 물론 기획과 무대 장식까지 도맡은 비주얼 디렉터 서영희. 최고의 멤버가 모여 완벽한 호흡을 맞춘 결과다. 패션쇼가 끝나자 관람객들은 “마치 봄밤에 꿈을 꾼 듯하다”며 찬사를 쏟아냈다.


“남자 학자들의 옷 ‘심의’에서 모티프를 얻어 여자 버전으로 작년에 디자인한 것을 이번에 적용했어요. 각양각색 장미 패턴이 들어간 이탈리아 오트쿠튀르 원단과 우리 전통 소재를 다양하게 결합했고요. 그간 준비하고 생각해놓은 저의 여러 시도가 유치하지 않고 패셔너블하게 완성된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해외 바이어들에게 한복을 패션으로서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여서 저에겐 그 의미가 더욱 특별했습니다.” 전통에만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한복을 디자인하고 싶다는 바람과 1백 년 이상 역사를 이어가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지닌 디자이너 김영진.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